주부가 되고 첨쓰는 일기 그래봤자

1)한 집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주체가 되자,
드디어 후라이팬의 부침개를 뒤집개없이
던져 뒤집어볼 용기가 났다.
게다가, 한번에 성공! 두번째도 연이어 성공!
무려 100%의 성공률.
엄마랑 살때는 해보고는 싶지만 감히 시도는 하지 않았던(저런건 애송이가 할수 없는, 엄마들만의 테크닉일거야)일을 이렇게 쉽게 성공하니 뭔가 짜릿하면서도 허무했달까.
그때는 지금보다 운동신경도 좋아(퇴보중인걸 부인하지 않겠다) 더 수월하게 해냈을텐데 - 아무튼,
부침개 따위 한손으로 뒤집는 여러모로 아주 매력적인 어른의 손재주를 경험하고 나니 담엔 깍두기라도 담궈볼까 하는 (지나친)자신감이 ㅎㅎ

2)게다가 오늘은 앞치마에 왜 주머니가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달은 날.
앞치마를 두르고,
오른손으로 청소기를 돌리며 ,
왼손으로 더듬더듬 '어쩌면 있을지모르는-있다면 참 고마울' 앞치마의 앞주머니를 찾다가 꼭맞는 위치에 넉넉한 사이즈의 주머니를 발견했을때의 그 쾌감이란!
역시 내가 필요로하는건 이미 다 세상에 나와있구나-하는 진리를 다시한번 깨달으며, 앞치마를 고르는 조건이 하나 추가되는- 뭔가 능숙하고 까다로운 어른에 한발짝 다가서는 순간이었다.

기적이 뭐 다른건가. 그래봤자


2012년을 보낼 때는 2013년을 '기대'한다기 보다는 그냥 기다렸다. 그 땐 시간이 빨리 가는 것만이 살 길이었달까-

얼마 전 만난 쏠메이트 언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도 모르게
2014년이 너무 기대되! 라는 쉽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. 
우와.. 
10년 전을 돌아봐도 그랬지만, 
단 1년 전만 돌아봐도 하나님은 내 기도를 언제나 듣고 계시다는 걸 모를 수가 없다. 
그래서 아마 '기대'를 할 힘이 생기나보다. 

정말 사소하고 소심한 내 모든 기도를 놓치지 않고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.. 

그래, 내가 두려워하는 것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 
정말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싶다. 

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 
하나님은 변하게 하신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. 

새해가 기대되는 기분도 처음이고
나이가 먹기 싫은 것도 처음인 !
첫 12월 31일이다. 




고민에 대한 고민 그래봤자


그리하여 결국 모인 멤버는 시댁도 없고 아가도 없는 우리 넷.
2000년도에 졸업한 종로구, 그 동네의 피자집에서 10여년 만에 만나 떠드는데 계속 드는 생각.. 
'말이 통한다'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. 
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사는 것, 악기연주를 업으로 삼는 것- 
그런게 어떤 의미이며 현실에 어떻게 실체를 드러낼 지에 대해선 (아마도)아무 생각도 없었던 우리가,
성인으로 13년을 살고서 만나서는 그 동안 했던 고민은 굳이 말 하지 않아도 아는- 그런 사이가 되어있었던거다.

이제 대학원을 마치고 귀국해 일자리를 알아보는 친구, 방글라어로 일기를 쓴다는 친구, 불과 작년 말에 머리를 다치는 큰 사고를 겪은 친구.. 그리고 계약직으로 연명하며 이 순간에도 열 가지 고민을 동시에 떠올리는 나. 
그 때는 우리 다 같은 딱 한가지 고민 뿐이었는데, 지금은 얼마나 복잡한가- 생각하니 더 애틋한 것 일지도 모르겠다. 여기에 시댁도 있고 아가도 있는 그 애들까지 모이면 우리의 고민은 풍선처럼 부풀어 터지고 말겠지.

그래도 철 없어도 용서가 되는 젤 마지막 순간을 돌담길에 자리한 여고에서 함께 했다는 건 
누구에게도 당연하지는 않은 축복이라는 걸 다시 한 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더라. 
적어도 다음에 만날 때는 다들 한 가지씩의 고민은 덜고 나오면 좋겠다. 
그게 남자 문제 일 수도 있고 혹은 취직에 관한 거 일수도 있지만
고민에는 경중이 없다는 생각.이므로, 
아무거라도 하나씩 덜고 만나면 좋겠다. 





여가 이상의 쉼 그래봤자

누가 그러더라, 여행가는 사람이 부러운게 다른게 아니라 여행을 떠날 그 '마음의 여유'가 있다는게 부럽다고.
추진력이 유난히 뛰어난 친구의 제안으로 건바너 셋이서 급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고 첫째둘째언니에게 말하자 
한결같이 '이게 몇 년만의 여행이냐'며 즐겁게 놀다오라고, 눈물의 이모티콘 세례를 받았다. 
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로 (그러니까, 무려 2년.) 여행이란 걸 떠난 기억이 없다. 
연애 중에도 내가 추진한 여행은 없었던 것 같고, 심신이 지친 날 질질끌고 떠나준 그 친구 덕분에 그나마 몇 번 서울을 벗어난 기억이 난다. 

 "아니, 무슨 마음의 여유가 필요해요~ 한 시간이면 가는 제주도인데!"라고 들뜬 마음에 무심히 내뱉었지만, 
3일 만에 돌아와 즐거웠던 사진을 쭉 훑어보니 그 사람의 말이 남 얘기가 아님을 깨닫는다.
게다가 그 '여유'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(완전한 노년기에 접어들기 전 까지는) 점점 줄어드는 것 아닌가.
 
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온지 만 하루만에 또 다시 올 하반기를 먹고 살 걱정& 인생 하반기의 살 궁리를 하며 
저녁을 먹고 동네를 한바퀴 도는데 고 3때 가장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던 친구에게 십 년 만에 연락이 왔다.
거의 점보지우개 수준의 기억력을 가진 나도,  클래식을 전공하려던 그 친구에게서 브라이언 맥나잇의 앨범을 선물 받고 닳도록 들었던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문득문득 유난히 보고싶고 궁금했던 친구였다. 연기하던 민영이, 그림 그리던 몇몇 친구들의 이름을 대며 조만간 만나기로 약속한다. 
'음악'이라는 내 '직업'-이 두 단어를 조합하기까지의 기나긴 시간이 주마등같다-에 대해 가까스로 객관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요즘,
아마도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될 확률은 적은 예체능 반 출신 33세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묘하다.

이번 여행은 오랜만이어서도 그랬겠지만, 타이밍 상 나에게 좀 특별했다. 
엄청 조용했던 제주에서 아무 생각 없는 듯 깔깔 시끌벅적하게 놀다 왔지만, 
이제 아가가 생기면 지금보다는 함께 하기 어려울 추진력있는 건바너 한 명과, 돈 안되는 음악과 사랑에 빠진 훌륭한 건바너 한 명과,  10년을 한 우물만 팠는데도 갈피를 못잡는 예민한 건바너 한 명이 다시 언제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에 더 열심히 놀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고..
셋 다 복잡하고 무거운 머리를 이고 떠난 여행이었지만, 벌써 그 시간이 그리워진다. 

모두에게 다른 아침. 그래봤자

 동이 트는 강변북로를 달려 귀가하다니.. 이 피곤한 와중에 완전 정성스런 샤워로 고기냄새와 담배냄새를 제거하고는,  (이번주간이 청년부 특별 새벽성회라, 온라인으로라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) 노트북을 열었다. 특별 새벽성회는 실시간 중계하지 않고... 피곤한 몸과 복잡한 마음으로 웬 새벽일기를 쓰려는데, 이 하룻밤 사이에 극과 극을 오가는 실시간 검색어들이 새삼 어색하다. 
 하룻밤 사이에, 올라갈까- 싶던 공연은 우여곡절끝에 일주일 어치의 공연을 무사히 치렀고, 그 가운데 누군가는 그만두고 싶고 누군가는 터닝포인트를 겪으며, 누군가는 즐겁다. 같은 밤 사이에 누구는 그 비행기를 타게 되어 다치거나 죽거나 그의 남겨진 애인이거나 가족이 된다. 그리고 누군가는 로또에 당첨되며, 어떤 천사는 35개월의 삶을 마치고 다시 하늘나라로 간다. 

 엊그제 들은 엄마의 30년 전 이야기, 엄마에겐 1980년 11월 22일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. 그 다음 날 새벽부터 엄마의 삶 속에,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. 아주 사소한 마음의 움직임으로, 그리고 옮긴 믿음의 행동으로 삶 전체는 뒤집힌다. 그건 매 순간에 충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된다. 요즘에는 정말 멍 때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. 올 해에 들어 나는 안 하던 짓을 꽤 하고 있고, 그건 나의 능동적인 선택에 의해서다. 사실 진작 이렇게 20대를 보냈다면 어땠을까-하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후회가 스물스물 밀려 오지만, 결국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'지금부터라도 그렇게 사는 것' 뿐이다. 33년 전 엄마는 벌써 두 딸을 초등학생으로 키워 놓고, 시엄마에게 쫓겨나보기도 했으며, 남편은 지방을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, 건강도 좋지 않았다. 그 때 엄마는 아마도, 지나가는 예수님의 옷깃에 손이 닿으면 병이 나을거라 믿은 그 여인처럼 아무런 보장도 없이 하나님을 붙잡았을거다. 매일 내가 붙잡는게 내 인생을 그려간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든다. 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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